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한의사(漢醫師)였다. 나 역시 오랜 세월 한의업에 종사해왔다. 더욱 뿌듯한 것은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하던 아들이 군대를 다녀온 후 전공을 바꿔 원광대 한의대에 새로 입학, 현재 재학 중이라는 접이다. 한의업이 '가업(家業)'이 될 상황에 놓인 것이다.
나는 선대(先代)와 더불어 3대에 걸쳐 약초와 침술을 이용, 질병으로 고생하는 숱한 환자들을 돌봤다. 그러나 나는 한의사(韓醫師)라는 점이 그분들과 다르다고 감히 말한다. 혹자는 '한(漢)이나 한(韓)의 단어 차이에 무슨 큰 의미가 있느냐'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여기에 중요한 점이 있다고 본다.

서양에서는 한의(漢醫)를 'Chinese Doctor(중국의사)'라 부른다. 역사상 중국이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점엔 동의하지만, 머지 않아 한의(韓醫), 즉 'Korean Doctor(한국의사)'가 동양의학의 선두주자가 되어야 한고, 점차 그런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나의 지론이다. 애국적·국수주의적 소치에서가 아니라, 한의학의 '뿌리'에서 그 연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의학(漢醫學)의 최초 발상은 <내경(內經)과 BC2300년 <역(易)>(강태공이 주나라 문왕 때 집대성해 주역(周易)으로 불리기도 한)에서 비롯된다. 우주의 원리를 음양론에 근거해 해석한 <역>은 이후 장중경(張仲景)이 개창한 '상한론(傷寒論)'과 3음·3양론, 12경락과 경혈(經穴)을 포함한, '중경육경증(仲景六經症)'으로 이어지고, 이때부터 한의학이란 이름으로 체계화되기 시작한다. 중국 한나라 때 융성했던 의학이라는 뜻이다.
우리 나라에선 조선 선조 때 의성(醫聖) 허준(許俊)이 당시 중국에서 난립하고 있던 8천여 권의 한의학 관련 잡서(雜書)들을 정리, '동양의학의 금자탑'이랄 수 있는 <동의보감>을 완성한다. 동양의학(東洋醫學)의 진단과 처방에 관한 체계적인 이론서가 최초로 등장한 것이다.
사실 이 때부터 한의학의 맥이 우리 나라로 건너오게 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의보감>을 단순히 의학서적 한편 저술한 정도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동의보감>은 동양의학의 꽃이었다.'는 한 가지 사실을 내세워 한의학(韓醫學)을 고집한다는 것은 억지 주장처럼 보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정적인 전환점은 19세기의 걸출한 한의사 한 사람의 독창적인 한의학 이론에서 시작된다. 동무(東武) 이제마(이제마 · 1837~1900)의 이른바 <사상의학(四象醫學)>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은 크게 4가지 체질을 타고 태어난다. 태양 · 태음 · 소양 · 소음체질이 그것이다.'는 내용의,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처방과 치료 체계를 갖춘 의학이론이 탄생한 것이다. '모든 사람의 체질과 치료방법은 똑같다.'는 전제하에 환자를 치료해온 전통 한의학에 일대 혁명적인 일이었다.
오늘날 필자를 포함해 많은 한의학자들이 이제마 선생의 사상의학을 연구 중이고, 일부 한의사들에 의해 8체질론, 24체질론 등이 등장하고 임상에 응용하고 있지만, 여기서 이런 지론들의 섣부름과 가부(可否)를 언급하는 일은 피하고자 한다. 중요한 문제는 사상의학이 도대체 어디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느냐는 점이다.
물론 <사상의학>은 이제마 선생의 머리 속에서 나온 것이지만, 놀랍게도 그 뿌리는 <천부경(天符經)>의 '사방론(四方論)'이다. 그렇다면 <천부경>은 또 뭐가. 우리 민족의 연원(淵源)과 우주의 원리를 적시한 총 81자로 구성된 수수께끼 같은 경전이 아닌가.
또 BC4700년경 만들어진 <천부경>은 다름 아닌 <주역>의 탄생을 가져온 원전이 아닌가. 그리고 한방의 원전인 <내경>은 복희 · 신농씨와 더불어 삼황(三皇)으로 불렸던 황제(黃帝)가 지은 책이 아닌가. 황제가 동이족(東夷族)으로 우리 민족의 조상이었음을 역사적으로 증명한다.
결국 우리 민족의 경전 <천부경>과 황제의 <내경>이 동양의학의 뿌리인 셈이고, 마침내 6천여 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지난 후 허준의 <동의보감>으로 이어진다. 이는 다시 <천부경>을 재해석한 이제마에 의해, 한 단계를 훌쩍 뛰어넘어 <사상의학>이란 이름으로 탄생하게 된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경전에 뿌리를 둔, 그러나 접근법은 서로 달랐던 두 의성<醫聖>이 허준 · 이제마 선생이 동양의학의 거대한 체계를 일단 완성한 셈이다.
이 점이 바로 이제부터라도 동양의학이, 한의학(漢醫學)이 아닌 한의학(漢醫學)을 불려져야  할 명백한 이유인 것이다. (韓醫學이란 용어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한의사로 일한 지난 40여 년을 돌아보건대, 한의학에 대한 세일의 관심은 하루가 다르게 놈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과거 서구문물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으로 '비과학적이고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평가와 '전통의학'으로 치부돼 한 구석으로 밀려났던 한의학이, 명석한 후학(後學)들에 의해 새로운 세계를 열어나가고 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다.

일천한 지식을 바탕 삼아 그 동안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 · <이아(爾雅)> · <법언(法言)> · <산해경(山海經)> 등, 동양철학과 우리 민족의 경전을 해역(解譯)해온 것도, 하느이학의 세계화 작업에 나름의 주춧돌을 마련하고자 하는 바랍에서였다.
개인적으로, 21세기는 한의학이 세계의학으로 웅비(雄飛)할 시기라고 본다. 방역학이나 세균학 등, 분석적인 측면에서 우월성을 보이는 서양의학과 한의학의 체질학, 침술 등을 더욱 발전시킨 상생(相生)의 정신으로 인류의 오랜 숙원인 '질병과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는데, 우리 한의학이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 책 <비방(秘方)>은 미욱한 필자가 한의업에 종사한, 지난 40성상의 임상 경험과 응용처방 등을 나름대로 알기 쉽게 정리한 것이다. 하루 많게는 20~30명, 적게는 10여명씩의 환자와 더불어 웃고 울었던 기록이다. 어림잡아 20여만 명의 환자와 더불어 살았던 세월이었다. 그 동안 단 한 첩의 처방으로 거짓말처럼 병이 나은 환자도 있고, 몇 개월씩 함께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치료한 환자도 있었다.
우선, 1차로 부인병과 임산부에 대한 증상별 처방집을 내놓는다. 이어 소아질환 · 난치병 등에 관한 임상자료를 정리하고, 힘이 닿는다면 필생의 과업으로 늘 여겼왔던 동무공(東武公) 이제마 선생의 '사상의학(四象醫學)'을 체계화하겠다는 욕심도 펼쳐볼 생각이다.
 가장 큰 가르침을 주셨던 조부(崔桂鉉)와 선친(崔泳來) 영전에 책 출간 소식을 가장 먼저 고(告)하고 싶다. 아울러 한의사로 호라동하는 동안 여러모로 은혜를 베풀어주신 조경희 한국수필가협회회장, 박권상 KBS사장, 홍일식 전고려대총장, 홍문화 박사, 허정 서울대보건대학원장, 송일병 경희대한의대 교수, 장인태 산부인과 의사, 이해학 성남주민교회 당회장, 이호윤 순복음교단 총무목사 등, 여러 선학(先學)님께도 감사의 뜻을 전한다. 특히 오랜 세월 무뚝뚝한 남편을 오로지 '내조'를 화두(話頭)삼아 인내해준 아내 김금자에게 이 자리를 빌어 새삼 고마움을 표한다.
아무쪼록 이 책이 미래의 우리 나라를 이끌어갈 훌륭한 2세를 낳고 기르려는 임산부들, 그리고 질병으로부터 고통받는 여성들에게 하나의 의미있는 대안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겠다.
동도(同途)를 걷는 한의사들과 독자 재현의 기탄 없는 질정(叱正)과 조언을 항상 기다린다.

2001. 初夏
행곡(杏谷) 최 형 주